티스토리 뷰
반응형
혹시 게이샤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가? 그렇다, 장쯔이가 게이샤로 나온다고 해서 수많은 중국인들에게 돌팔매를 맞았던 바로 그 영화다.^^; 그럼 게이샤는 무엇일까? 노래와 춤을 아는 고급 윤락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약간 다르다. 게이샤는 1751년 교토의 한 유곽에서 처음 등장(?)했다고한다. 게이샤(芸者:예자)의 원조는 원래 남성으로 한자 풀이 그대로 노래, 춤, 그림, 시등 다양한 예능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에서는 옛부터 게이샤와 윤락녀를 엄격히 구분했다고한다. 일종의 예술가로 평가받는 게이샤는 고객과의 동침이 금지되어있으며, 설혹 동침을 하더라도 돈을 받지않는다. '연애'는 가능하지만... 몸은 팔지는 않는 예능인의 자존심이랄까...
어쨌든 그 게이샤의 추억에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이 교토 기온 거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화는 LA에 기온 거리를 본뜬 세트장을 만들어서 촬영했지만...^^;
자, 그럼 필자와 함께 기온 거리를 돌아보도록하자...^^
화려한 기모노와 붉은입술 새하얀 화장의 게이샤는 한때 일본 여성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과는 달리 대부분의 게이샤는 가난한 집안의 딸이거나, 버림을 받았다던가 하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경우가 많다고한다. 그러나 이들은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진정한 예술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근래에는 게이샤가 되고자 하는 소녀들도 많이 줄었고, 이길로 들어서는 경로도 예전과는 달리 일본전통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화려해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게이샤가 되기위해선 혹독한 수련이 뒤따른다고한다. 오죽했으면 10명의 마이꼬 가운데 9명 정도는 수련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다고하니 그 혹독함을 짐작할만하다.
한가지 안타까운 건 일본은 게이샤를 일종의 문화인으로 인식하며 보존하려 하고 많진않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그 뜻을 배우려고 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기생이라는 의미가 안 좋은 쪽으로만 알려지고 그 명맥조차 끊어져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이처럼 풍류가득한 시조한수를 멋드러지게 읖던 황진이의 기상은 더이상 찾아볼수없는 것일까...^^
어쨌든 그 게이샤의 추억에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이 교토 기온 거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화는 LA에 기온 거리를 본뜬 세트장을 만들어서 촬영했지만...^^;
자, 그럼 필자와 함께 기온 거리를 돌아보도록하자...^^
기온 거리 초입에서 걷고있던 청춘남녀... 역시 젊은 일본인답게 패셔너블하다. 저런걸 소위 말하는 '간지' 패션이라고하나...^^;
식당앞에서 물을 뿌리던 아저씨... 카메라를 보자 호스를 내리고 환하게 미소짓는다...^^
전형적인 일본 옛거리...
대운원이라는 쇼와 시대의 별장이라고 한다.
절인지 신사인지... 여튼 독특하게 생긴 건물이다. 앞에는 많은 등이 걸려있다. 삼면대라고 적혀있지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빨간 깃발 옆에선 필자. 왠지 '냉면개시' 깃발이 연상되어 묘하게 배가 고파왔다.ㅋㅋㅋ;
자세히 보니 간판에는 대흑천이라고 쓰여있었다. 한자가 쥐약인 필자지만 저건 읽을수있다. 대흑천은 인도 신화의 마하칼라를 불교에 대입하면서 나온 신이다.(예전 퇴마록에서 익힌 지식...ㅋㅋ) 본래 전쟁을 관장하는 신이지만 재물과 복을 상징하기도 해서 일반인들도 많이 믿는다고한다. 예전엔 이곳 상인들과 게이샤들이 이곳에와서 복을 빌며 기도를 했을까...^^
골목길에 있던 한 음식상점... 오이지, 마늘짱아치, 단무지, 생강절임등 전형적인 일본 절임 음식들이 가득하다.
평화로워보이는 거리... 잡상인들이 자리를 펼쳐놓고 종이로 만든 양산, 장신구, 노리개, 부채등을 팔고있었다. 그나저나 게이샤의 거리인데... 게이샤는 안보이는군.... 역시 저녁에 왔었어야했나...^^;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구경하려는 순간... 멀리에 뭔가가 보인다... 혹시 게이샤?
좀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직도 좀 쑥스러워 트럭뒤에 숨어서 카메라에 담았다. 알고보니 마이꼬들이다. 게이샤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겠지만, 마이꼬는 처음 듣는 사람도 많을것이다. 게이샤는 쉽게 될수있는게 아니다. 어린시절부터 일종의 수련생인 마이꼬 시절을 근 7~8년간을 거쳐서 공식적인 '데뷔'를 했을때 정식 게이샤가 될수있는것이다. 7~8년이라... 정말 길다. 마이꼬가 되려면 무용이나 말씨, 예의 범절을 공부하는등 1년간의 수행기간을 거치고, 마이꼬로서 데뷔하며. 마이꼬로 데뷔후 또다시 예능을 연마하여 6~7년후에는 게이샤로써 데뷔할수있는것이다. 이 의식을 옷깃바꾸기라고도 하는데. 마이꼬의 적색옷깃이 게이꼬의 백색 옷깃으로 바뀌기 때문이란다.
용기를 내어 좀더 가까이 가서 촬영해보았다. 다행히 마이꼬들도 내 카메라를 보고 빙긋 웃을뿐 크게 거부하지않는다...^^; 알록달록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한 손엔 양산을, 얼굴과 목덜미에 하얗게 분칠을했다. 고대 일본에서는 하얀 얼굴이 미인의 상징이었다고한다. 아마 여러분들도 일본 방송이나 혹은 옛 일본 그림에서 하얀얼굴의 일본 여성들을 본적이 있으리라...
인력거꾼과 뭐라뭐라 얘기하던(흥정인가...) 마이꼬가 인력거에 올라탄다. 이들은 이 인력거를 타고 프로필을 위한 사진도 찍고, 돌면서 인사도하고, 게이샤로써의 데뷔를 위한 준비를 하러 간다고한다.
인력거꾼과 마이꼬가 즐거운 듯 웃고있다. 뭐가 그리 즐거우세요? 저도 같이 놀아요^^;
다른 한명의 마이꼬도 인력거에 올라탔다. 오늘로써 이들도 마이꼬에서 게이샤로 화려한 데뷔를 하게될것이다.
화려한 기모노와 붉은입술 새하얀 화장의 게이샤는 한때 일본 여성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과는 달리 대부분의 게이샤는 가난한 집안의 딸이거나, 버림을 받았다던가 하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경우가 많다고한다. 그러나 이들은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진정한 예술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근래에는 게이샤가 되고자 하는 소녀들도 많이 줄었고, 이길로 들어서는 경로도 예전과는 달리 일본전통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화려해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게이샤가 되기위해선 혹독한 수련이 뒤따른다고한다. 오죽했으면 10명의 마이꼬 가운데 9명 정도는 수련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다고하니 그 혹독함을 짐작할만하다.
한가지 안타까운 건 일본은 게이샤를 일종의 문화인으로 인식하며 보존하려 하고 많진않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그 뜻을 배우려고 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기생이라는 의미가 안 좋은 쪽으로만 알려지고 그 명맥조차 끊어져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이처럼 풍류가득한 시조한수를 멋드러지게 읖던 황진이의 기상은 더이상 찾아볼수없는 것일까...^^
반응형
'국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차야, 녹즙이야? 고다이지 다도 교실에 가다. (35) | 2008.10.02 |
---|---|
이소룡이 동상으로 만들어졌다구? 홍콩 성광대도에 가다...^^ (18) | 2008.09.23 |
입다가 망한다는 교토의 니시진... (31) | 2008.09.18 |
오랑우탄은 과연 어느 나라 말일까? (27) | 2008.09.09 |
인도네시아에서의 밀키스 삼총사 (6) | 2008.09.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