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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Malaka)에서도 지도 한장 달랑 들고 돌아다니던 우리는 부킷 차이나(Bukit China) 쪽으로 향했다. Bukit은 언덕, China는 중국이니까 중국인의 언덕이란 뜻. 그렇담 중국도 아닌 말레이시아에 왜 이런 지명이 있는걸까? 명나라 시대의 장군인 정화의 원정 이후, 말라카의 술탄이었던 만수르 사(Mansur Shah)는 명나라 황제의 딸 항리포(Hang Li Poh)를 왕비로 맞았다. 중국의 힘을 빌려 북방에 있던 아유타야(옛 태국의 나라)를 견제하려 한 것이다. 항리포가 500명의 시녀를 데리고 이 언덕 위에 살게 된 이후로 이곳은 중국인의 언덕(Bukit China)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한다. 또한 이때 정화 장군의 원정길에 따라 나선 상인들이 동남아 각지에 정착하여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살고있다. 화교의 동남아 진출이 1400년대에 이미 이루어졌다고 하니 꽤나 놀라운 일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건너편에 뭔가 탑 같은게 보인다. 혹시 저건가 싶어서 길을 건너자 비석이 하나 보인다. 내용을 읽어보니 그곳은 일본에 의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중국인들의 혼을 기리는 충혼탑 같은 거였다. 지나간 일이지만.. 일본이 일으켰던 전쟁의 흔적이 전세계 곳곳에 아직까지 남아있구나. 반성하시길...

그리고 그 바로 왼쪽 편에 하얀 벽의 테두리로 가로막혀있는 무언가가 보이길래 다가가보니 중국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하다. 그곳이 바로 중국 공주인 항리포가 시녀를 대동하고 목욕을 했었다는 Hang Li Poh’s Well(항리포의 우물)이란다.

 
근데 가만히 보면 우물 뒤쪽편에 있는 벽에 조그마한 구멍들이 보인다. 저게 뭘까, 이곳은 더운 지방인데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으니 답답할까봐 통풍구를 낸걸까? 아님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한참을 궁리해봤으나 결론이 나지않는다... 한동안의 진지한(?) 토론끝에 우리가 낸 결론은...

"형, 이 우물에서 공주가 목욕을 했었으니까..."

"그거군! 훔쳐보는 구멍..."

^^; 공주님이 목욕하는데 훔쳐보기라도 했다간 술탄한테 혼이 나지않았을까... 혼만 났을까.. 개작두를 대령해라 이러지 않았을까...ㄷㄷ; 어쨌든 이 우물에는 동전을 던져서 가라앉을 때까지 동전이 반짝거리면 다시 말라카에 오게 된다는 전설이있다고 한다. 오호... 그렇군. 부랴부랴 동전을 찾으니 마침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가까운 가게에 들러 지폐를 깨서라도 동전을 넣자고 사촌을 꼬드기자, 사촌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형, 안그래도 말라카에 온 이후로 며칠동안 걷기만 하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여기 또 오고 싶어?”

컥... 이런 젊은이의 낭만과 청춘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고...-_-;; 하여간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야 정신을 차린다는... 갑자기 왠 군대 얘기...-_;;; 그리고 가만보니 우물 위에는 동전을 넣지 말라는 이유인지, 물에 빠지지 말라고 그러는지,아님 밤중에 누가 몰래 와서 동전을 수거(?)해 갈까 두려워서인지 촘촘한 철망이 둘러져 있다. 철망 사이를 비집고 동전을 던져봤자 반짝이기는 글렀다고 애써 위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항리포의 우물 근처에 있던 수많은 중국 관관객들은 과연 항리포의 우물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이곳에 중국인의 언덕이 있다는 신기함과 반가움? 아니면 정략 결혼의 희생양이 된 공주에 대한 연민? 어쨌거나 세월이 흐르고, 옛사람은 간데 없지만 중국인의 언덕과 우물은 여전히 남아 옛 중국과 말레이시아의 교류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부탁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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